하루짜리 눈사람

하루짜리 눈사람

부서질 걸 알면서도 만드는 일에 대하여

부서질 걸 알면서도 만드는 일에 대하여

2026. 1. 25.

매년 눈이 오면 눈사람을 만든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아침에 일어났는데 바깥이 하얗게 덮여있으면 눈을 밟으러 나간다.
밟다 보면 만지게 되고, 만지다 보면 모양이 생긴다.
완성하고 나면 집중했던 만큼 애착이 생겨서 사진을 찍는다.
이상하게 정이 들어서 혼자 밖에 두고 오려면 발걸음이 잘 안 떨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눈사람은 예외 없이 하루 안에 박살이 난다.

운이 좋으면 형태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토막이 나 있고, 대부분은 폭탄을 맞은 것 마냥 형체도 없이 무자비하게 부서져 있다.
예외가 없는 일이라 익숙해질 만도 한데, 매번 비슷하게 쓰다.

쓸모도 없고 이익도 없는 것이라서일까.
그냥 가만히 둬도 알아서 곧 녹아 사라질 텐데.
아, 그래서일까? 어차피 곧 없어질 것이라서?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다.
굳이 파괴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을 넘어 아무렇지 않게 실행한다는 사실이, 설사 아이들의 장난일지라도, 여전히 잘 이해되지는 않는다.

모든 눈사람의 이면에는 즐거움과 의미 있는 경험이 생생히 살아있는데.
세상의 것들이 그렇듯 겉으로 보이지 않을 뿐 이면이 존재하는데.
그걸 보지 않거나, 보지 못하거나, 보지 않기로 선택하는 태도가 나는 아직도 낯설다.
이면을 보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귀하다.

그래도 매년 눈사람을 만든다.
하루를 못 넘길 걸 알아도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나한테는 귀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