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2. 1.

자연과 친해져 보겠다고 상추를 심었던 적이 있었다. 처음 키워보는 것 치고 상추는 무성하고 씩씩하게 싹을 내주었다.
그런데 기왕이면 보기 좋으라고, 무질서하게 자란 상추들을 뽑아 일렬종대로 줄을 세웠다.
예뻤다.
하루이틀이 지나니 얘네가 또 줄을 이탈한다.
다시 뿌리를 뽑아 각을 맞춰주었다.
그렇게 상추들은 완벽에 대한 나의 반복적인 강박에 파업을 선언하고 다 죽어버렸다.
좀 섬뜩하지만 자연의 본질과 친해지기 시작한 계기였다고 할 수 있겠다.
자연을 인위적인 규격에 억지로 맞추면 생명력이 망가질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으니까.
상추 입장에서 내 줄 맞춤이 얼마나 괴랄했을까 (미안).
우리는 상추다.
산업화 이후의 세상은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것을 기계화시켰고,
생물인 우리 스스로도 한 치의 오차가 없이 기능하는 기계로 대하기 시작했다.
그 강박은 요람에서부터 시작된다.
최소한의 참고치여야 할 '발달 표'가 어느새 아이의 정상 여부를 판가름하는 엄격한 자가 되었다.
조금만 늦어도 규격에 맞추려고 안달을 내는 이들이 많다.
같은 장소에 나란히 심어진 벚나무들도 꽃을 피우는 속도가 제각기 다른데,
효율의 세상에서 우리는 남들보다 조금 늦게 꽃을 피우면 고장난 상태로 진단된다.
하루에 물 2리터, 만 보 걷기, 아침 6시 기상 같은 체크리스트를 달성해야만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말한다.
진짜 기계조차 날씨와 환경에 따라 유지보수 방식이 달라지는데, 살아있는 생명체인 우리는 왜 자신에게 기계보다 더 가혹한 일관성을 강요할까.
줄 세우는 매뉴얼을 가스라이팅 하지 않고, 아주 건강하고 삐뚤빼뚤한 상추로 살아가도 안전한 사회를 꿈꾼다.
